11월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이름, 김성재. 음악

이전에 서태지의 음반 이야기를 하다가 그랬죠.
저는 [하여가]를 힙합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서, 힙합과 록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더라고.
제게는 힙합이라는 장르가 록과 댄스 사이에 포괄적으로 걸쳐진 애매모호함으로 그려졌습니다.
지금이야 [하여가]는 비트만 힙합인 얼터너티브에 발을 걸친 댄스곡이라고 생각하지만요,
제가 [하여가]를 힙합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난해한 화두는 바로 어느 댄스그룹의 노래였습니다.

춤이라고 하면 브레이크 댄스같은 아크로바틱이나, 현진영의 토끼춤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춤은 뒤에 버티고 선 댄스팀이 추는 거고, 앞에 선 가수는 노래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가수는 노래가 끝나기 전엔 무대에서 내려오면 안 된다 생각했는데,
그리고-댄스음악은 제철이 지나면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냉장고 밖의 과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래저래 참 많은 선입견이 공존하던 유년기는 듀스의 출현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작사/작곡/프로듀스를 담당하는 이현도, 코디네이션/안무를 담당하던 김성재.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들의 가창력은 좀-아니 사실 많이-딸리는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이현도는 랩퍼로 보나 보컬로 보나 결격사유가 많은 사람입니다.
비음이 앵앵거리는 그 목소리는 사실 대단히 부담스러웠으니까요.
그럼 김성재는 노래를 잘 불렀느냐면 그건 또 아니죠.
정직하다 못해 순박한 그 기교는 어쩐지 안타까울 정도로 밋밋했으니까요.
당시 '정통파 힙합 듀오'를 표방하던 그들이 정말로 힙합을 들고 나왔느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물론 당시 나온 노래들만 놓고 보면 힙합에 가장 가까운 노래를 부르기는 했어요.

어쨌든, 이런저런 딴지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파죽지세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어찌 보면 서태지와 아이들의 성공 요인과도 비슷한 부분인데요,
화면상으로 충분한 임팩트를 전달할 수 있는 춤과 의상이 10대에게 어필할 수 있었고,
랩에 의한 긴 가사의 전달이 당시 청소년의 정서에 부합되었기 때문이며,
스스로 노래를 만들 수 있는 '뮤지션'이라는 차별성이 그들에게 부여되었죠.
비록 그 노래들이 상당부분 해외 트렌드의 뒤늦은 추종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태지가 그랬듯, 듀스는 생소한 장르의 유입 당시에 가장 앞서있던 장르 뮤지션이었습니다.
새로운 장르를 표방하면서도 기존 국내 음악의 멜로디 정서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은 물론,
그 음악이 표준 이상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군요.
그리고 그들은 모두 지금은 전설의 한 모서리로 우리에게 기억됩니다.

제가 오래 전에 만난 어느 음악분야 종사자의 말에 따르면,
"이현도는 듀스 시절이 가장 자기에게 맞는 음악을 하고 있었던 시기였다"고 평합니다.
사실 이현도의 솔로 음반은 1집 이후 심하게 외면당했는데요,
오리지널리티를 중시하던 당시 힙합의 흐름을 따라가려다 실패한 거라는 평가도 있지만,
국외에서 적절한 파트너쉽 없이 음악적 행보를 이어가는 스타일이 큰 요인으로도 보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현도의 부진 이면에는 김성재의 부재가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성재가 잘생긴 남자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팔다리가 길고 맵시가 좋은 스타일로 기억합니다.
다리가 짧아보이기 딱 좋은 아이템인 힙합바지를 입고도 유독 훤칠해보이는 모습.
가슴이 후련해지도록 팔다리를 한껏 떨쳐내며 흔들리던 그 춤사위.
딱히 대단한 기교도 없고 성량도 짧지만 대신 순박하게 와닿던 목소리.
마치 왕으로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무대 위를 자기 집인 양 활보하던 자신감넘치는 모습.
그는 춤에 열광하는 소년들과 사춘기 소녀들의 마음을 뒤흔들던 스타일 아이콘이었습니다.

누가 더 잘났다, 누가 더 중요하다의 문제로 어느 한 멤버는 열등감을 느낄 법도 했는데,
실제로 그게 가능한 것이 듀엣이라는 구조이기도 한데,
임무분담이 뚜렷하고 서로의 장점이 분명한 만큼, 이들에게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4집에 이르도록 이렇다 할 의견차가 보인 적도 없었고,
이현도가 프로듀싱한 김성재의 솔로 1집은 사실상의 듀스 5집이라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그것은 이들의 깨지지 않은 굳건한 파트너쉽을 과시하는 것과도 같았죠.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의 개인 활동이 끝나면 다시 듀스로 뭉칠 거라고, 그렇게 기대했습니다.

김성재가 솔로 데뷔무대를 가지던 날이었어요.
저희 집은 수험생이던 누나 때문에 텔레비전을 치워버린지 오래였습니다.
일요일 오후에, SBS 공중파 방송을 청취할 수 있던 라디오로 가요프로그램을 듣고 있을 때였어요.
그때 김성재의 무대가 이어지고, 노래를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거 꼭 방송으로 보고 싶어'

그날 가요프로그램이 나오는 수요일 하루만 텔레비전을 꺼내달라고 어머니를 졸랐던 기억이 납니다.
간신히 하루만이라는 허락을 받고 가슴이 희한하게 두근거리던 기억이 나요.
그날 밤에 라디오를 틀면 김성재의 노래가 어디서든 한 번은 나왔던 기억이 나고,
수요일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하는 생각에 답답하기도 하고.

다음날 아침에, 김성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했을 때의 기분은, 글쎄요.
그건 마치 안 친한 친구의 죽음을 전해들었을 때의 느낌과 흡사했어요.
이렇게나 낯설면서도, 그렇게도 당혹스럽고, 무언가 잘못한 것만 같은 이상한 느낌.
아무것도 달라지는것은 없는데,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

현재 가장 성공한 솔로가수라고 한다면, 인지도면에서 비를 꼽을 수 있겠죠.
비를 두고 "만약 유승준이 한국에 있었다면 2인자였을 거다" 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그 유승준은 "김성재가 살아있었다면..."이라는 말로 비교되곤 했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죽음 그 자체로 면죄부나 신격화의 영광을 누리기도 합니다만,
사람들이 김성재를 아쉬워하는 이유는 아마 그런 이유는 아닐 거라고 봐요.
김성재가 죽음으로서 듀스라는 아이콘이 다시는 그러모을 수 없이 산산조각났고,
천재적이었던 프로듀서 겸 작곡가 이현도는 자신만의 금자탑을 만들어낼 수 없었으니까요.

음악적인 부분에서 모든 것을 책임지던 이현도라면 김성재 없이도 혼자 잘 하리라 여겨졌죠.
그런데 막상 이현도의 솔로 음반은 듀스 시절만큼의 호평을 받지는 못했어요.
자신의 장기인 질 스윙 장르로 나가는 듯하더니, 일렉트로니카로 흐르는 듯하다가,
오리지널 힙합으로 가려고 움직이는 듯도 했지만, 호응 부재로 실패.
이현도가 만든 주석의 [정상을 향한 독주]는 분명 좋은 힙합 트랙이기는 하지만,
그건 사실 이현도의 노래를 주석의 스타일로 살려냈기에 성공한 사례였죠.
유승준의 [열정]은 좋은 노래였지만, 이현도 본인의 음반은 그런 스타일로 나오지 않아요.
지누션의 [말해줘]도 마찬가지의 사례로 꼽힙니다.
이현도는 항상 본인의 음반, 본인이 제작한 음반으로는 더 이상 성공을 거두지 못합니다.

이현도의 솔로 활동의 부침은 본인 스스로의 음악적 폭주에 그 요인이 있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저는 김성재가 묘하게 그리워집니다.
듀스 시절의 음반은 음악적 감각과 대중적 보편성 모두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비록 김성재가 음악적으로는 기여도가 0에 가까웠다고들 생각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김성재의 존재는 물그릇에 뜬 한 장의 나뭇잎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원하는 만큼 들이키다 체하지 않도록 가벼운 브레이크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현도가 자기 음반보다 타인에게 주는 곡으로 더욱 인정받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김성재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요.
타고난 춤꾼이었고, 패셔니스타였고, 설익은 가창력을 감추지 못하는 솔로가수 초짜 김성재.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정말 뮤지션으로 살아남아서 롱런했을까요?
아니면 연기나 모델, 의류산업에 손을 뻗어 새로운 출발을 했었을까요?
아니면 당시의 가수들 중 상당수가 그렇듯 연예기획사 대표로 전업했을지도 모르죠.
그도 아니면 그냥 조용히 매스미디어와 엇갈린 조용한 삶을 살았을지도.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아무도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와서 갑자기, 모두가 알던 그 김성재의 작은 가능성이 아쉬워집니다.
아직도 그의 목소리는 전업 가수라기에는 너무나 설익었고,
춤을 추던 그 모습은 여전히 20대의 한껏 무르익은 청춘을 간직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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