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트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 베스트, 그 첫 번째 시간입니다.
노래가 좋아서? 혹은 그 간지가 땡겨서?
뭐 이유는 다양합니다만, 이런 걸 해볼 기회가 생긴다는 것도 블로그의 장점이겠죠?
일단 여기 있는 가수들은 제가 10대 시절을 보내면서 가장 사랑했던 노래들의 주인공입니다.
1. 경험에 의한 역량과 새로운 시도 사이에 있는 그들-N.EX.T

마왕 폐하, 많이 삭으셨사옵니다.
첫 팀은 바로 제 중고교시절을 지배했던 N.EX.T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N.EX.T에 푹 빠져버렸어요.
NEW EXPERIMENT TEAM, 즉, 실험주의적 음악 시도를 위한 밴드라는 어필을 하고 나온 이 팀에 제가 반한 이유?
그건 단지 제가 신해철이 보컬로 있던 '무한궤도'의 1989년작, '그대에게'라는 노래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신해철이 이 노래를 만들 때는 '심사위원이 좋아할 만하게' 만든 노래였다는데...
"공연에서 이 노래 부를 때마다 쓰러지려고 드는 팬들 보면 참 미안했었다"나요)
아이돌이라는 개념이 없던 90년대의 가요계에서 신해철은 대학가요제 출신의 풋풋함으로 어필했었는데,
무한궤도 이후 줄곧 원하던 그룹사운드 형태의 팀을 결성한 것은 의외의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신해철은 그냥 노래 좀 쓸 줄 아는 제법 쓸만한 발라드 가수 정도로 인식됐거든요.
그러던 양반이 갑자기 장발을 질끈 묶고 마이크스탠드를 끌어안고 무대 위를 발광하며 돌아다니는 겁니다.
[도시인]이 수록되어있던 N.EX.T 1집은 지금 기준에서 본다면 메탈의 기준에서는 조금 이질적이기는 합니다.
신디사이저와 나레이션의 조화가 돋보이는 [아버지와 나]같은 경우는 꽤 파격적이었던 느낌이었구요.
지금 들으면 풋내마저 나는 이 음반은 그래도 기성 음악의 테두리에서 그렇게까지 크게 벗어난 건 아닙니다.
팀의 리더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해철의 가창력은...음, 글쎄요.
대마초 흡연 경력자에다 지금도 울트라 헤비 스모커인 이 남자, 가창력은 진짜 점점 더 바닥을 향해 달립니다.
(흡연자인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담배 좀 끊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3집까지는 그의 가창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대표적 저음가수인 신해철의 음역대는 얼핏 들어도 2옥타브 반을 못 넘습니다.
그런데 음역대가 안 받쳐줘서 노래를 부르는데 제약이 따르니까 신해철은 상당히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가성을 이용해서 고음역대를 처리하는 거죠.
김종서쯤 되지 않고서는 소화가 불가능한 이 고음역대를 가성을 쥐어짜서 부르짖는데, 그 감동이란.
가성은 진성에 비해 힘이 없다? 그것도 일정 이하의 음역대의 이야기죠.
오히려 상상을 초월하는 음역대-약 4옥타브 반 정도의 음역대를 가성으로 처리하니 이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일설에는 녹음하다 머리에 산소가 안 통해서 기절했다는 소문도 있는데,
듣는 사람의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그만의 고음처리는 이후로도 쭉 애용됩니다.
N.EX.T 최대의 장점은 바로 다른 밴드나 대중가수와 차별되는 가사 표현과 연주력에 있어요.
지금도 최고수준의 테크니션이라는 김세황의 기타는 신해철의 보컬보다 매력적이었죠.
그리고 신해철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생각이 묻어나는 가사도 N.EX.T의 팬들의 충성심을 자극했구요.
지금처럼 다양한 가사가 범람하는 시기에는 별로 대단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그 당시의 노래 가사가 지금에 비해 단순하다거나 질이 떨어진다는 건 아닙니다.
(가사는 오히려 요즘 노래들이 90년대는 고사하고 60, 70년대만 못합니다)
하지만, 사회 비판, 만화 줄거리, 부모님에 대한 고백,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의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표현.
대중가요의 90%는 사랑노래뿐이던 당시에 N.EX.T의 가사는 상당한 신선함이었어요.
[인형의 기사 Part II]는 동명의 만화 내용을, [영원히]와 같은 노래는 음악에 대한 신해철 개인의 열정을,
[이중인격자]같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위선을 꼬집은 노래 가사로 기억됩니다.
에리히 프롬의 철학적 성찰을 묘사하는 듯한 [불멸에 관하여]도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노래 가사는 거의 다 구어체를 표방하고 있었는데, N.EX.T는 잘 다듬어진 문어체를 사용했었죠.
물론 지금 보면 '겉멋'이 좀 심하게 들어있다는 느낌이 있기도 합니다만...
(신해철 본인이 현학적인 가사를 선호하다 보니 도가 지나친 감도 있습니다)
그래도 [껍질의 파괴]와 같은 노래 가사만큼은 꽤 임팩트있었어요.
치킨 먹으면서 썼다는(진짜일까요?) [날아라 병아리]의 가사도 명료하면서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물론 미국 팝 신의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를 지향하는 N.EX.T의 음악적 시도도 대단한 충격이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노래를 들자면 앞에 말한 [Return of the N.EX.T.PART.1]의 [불멸에 관하여]같은 노래가 있죠.
웅장하고 세밀한 코러스 라인으로 기억되는 [The Dreamer] 또한 잊지 못할 수작이구요.
'70년대의 한국 록의 황금기에 버금가는 감동이 느껴진다'는 평론가의 말은 예의상 한 말이 아니었을 거에요.
새로운 시도를 위한 팀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고 해서 서정성이나 대중성이 딸리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대중적인 노래인 [Return of the N.EX.T.PART.1]의 [날아라 병아리]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Return of the N.EX.T.PART.2]의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를 들고 싶네요.
-가사에 대해 말하자면, 이 서정적인 노래는 동성동본간 혼인 금지법에 대한 비난의 의미로 쓰여진 노래입니다.
발라드 넘버로 따지면, 1997년의 싱글 [HERE I STAND FOR YOU]도 빼놓을 수 없는 명곡입니다.
오케스트라와 그룹사운드의 조화라는 게 생각처럼 쉬운 건 아닙니다.
그런데 N.EX.T는 그걸 이 한 곡으로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싱글이 그다지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당시에 40만장이 넘어간 판매량도 놀라운 기록이구요.
단 두 곡만을 수록했지만 여타 가수들의 12곡짜리 정규 음반보다 100배 낫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습니다.
100인조 오케스트라, 피아니스트 김광석, 섹소폰 주자 제이크 등의 참여...
당시에는 한 곡에 이만큼의 정성을 들인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어요.
(당사자들은 싸게 만들어서 싸게 팔자고 내놓은 싱글이 제작비 1억이 넘어가버렸을 때 좀 흠칫했다고는 합니다만)
이 노래의 딱 한 가지의 흠-가사가 지금 들어보면 정말 오장육부가 다 오글거립니다.
그때 이 노래 들으면서 신해철이 작사의 신이라고 열광했던 제 자신이 참 쪽팔리네요...
뭐, 본인도 그리 깊이 생각하고 쓴 가사는 아니라고 나중에 그러긴 했습니다.
N.EX.T는 초기 구성에서 90년대 후반에 해체하기까지 멤버 교체가 잦았는데요,
원년 멤버인 기타리스트 정기송의 탈퇴 후 임창수와 드러머 이수용을 영입해 2집을 구성했는데,
이후에 다시 임창수와 이동규의 탈퇴로 김세황, 김영석을 영입합니다.
이 라인업은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N.EX.T의 멤버 라인이면서 동시에 베스트 멤버라고 할 만합니다.
3집부터는 이 라인업을 유지하고 첫 해체 직전까지 활동했었죠.
문제의 3집, [Return of the N.EX.T.PART.2]는 지금 봐도 그 구성면에서 혀를 내두를 음반입니다.
N.EX.T는 한 장의 음반을 내는데 다른 가수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요,
이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게 되어있다는 그들 안의 음악적 논의가 그만큼 활발했던 이유도 있습니다만,
멤버 각자의 역량이 그만큼 뛰어났기에 서로간의 조화로운 접점을 찾는 과정이 오래 걸렸던 이유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음반 준비 과정의 극단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음반입니다.
완성도와 음악적 깊이에서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었던 이 음반은 녹음기간에만 약 1년 가량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 음반이 나온 뒤에 멤버들은 "녹음실 근처만 가도 오바이트가 쏠린다"고 했다나요?)
한 장의 CD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 시간이 73분이었다는데, 이 음반은 66분을 조금 넘습니다.
보통의 음반이 40-50분 사이의 시간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양적으로도 대단한 차이죠.
하지만 14개의 트랙 가운데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의 황금기에 나온 걸작이기도 합니다.
첫 트랙, [세계의 문]은 2집때의 [껍질의 파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만합니다.
10분 가까운 러닝타임에서 단 한 순간도 지루해질 틈을 주지 않는 세밀한 편곡구조는 물론,
속주의 대가 김세황의 기타 연주는 놀랄 만큼 매력적입니다.
신해철의 철학적인 가사 또한 가볍게 치부할 수 없구요.
[Komerican Blues]나 [In the name of the god], [Money]와 같은 사회비판적인 트랙들이 주를 이룹니다만,
귀가 피곤할 정도로 격렬한 사운드의 향연 사이에는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와 같은 쉼터도 있습니다.
단순하지만 따스한 트랙 [아가에게]는 다른 세 멤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트랙입니다.
[Komerican Blues], [In the name of the god]는 사물놀이와 메탈의 접목, 판소리 삽입 등...
다분히 실험적이지만 실험에서 끝나지 않고 음악적 완성도를 충분히 과시한다는 점에서 돋보입니다.
그리고 이 음반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희망 예찬론, [Hope]입니다.
가장 소탈한 모던 락 사운드지만, 귀에 쟁쟁하게 울리는 트랙들 사이에 단비같은 달콤한 노래에요.
-사운드면에서 다른 트랙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은 있지만, 대중적으로는 가장 사랑받던 노래입니다.
하지만 4집은...말도 꺼내기 싫습니다.
3집에 비하면 좀 많이 부족하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음악적인 수준이 떨어진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건 만화영화 사운드트랙이지, 4집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네요.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만, 각 멤버들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던 3집과 너무 지나치게 비교됩니다.
이 음반에 이름을 먹이자면 [신해철과 N.EX.T 1집]이라고 하는 게 나을 거에요.
신해철 혼자 만든 음반에 N.EX.T가 세션을 해줬다 이상의 의미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물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고, 여기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먼 훗날 언젠가]나 [Lazenca, save us]같은 트랙은 물론 그 자체로 훌륭하기는 합니다.
밴드의 주도적인 역할이 신디사이저와 보컬을 담당한 신해철이었지만,
베이시스트인 김영석이나 김세황의 음악적 역량도 대단한 것이었죠.
이들 사이에 어떤 견해 차이가 오갔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N.EX.T의 마지막 음반은 멤버 모두의 충분한 일치점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요?
마지막 음반을 만화영화 사운드트랙으로 땡까먹고 도망간 신해철은 MONOCROM 음반 만들러 영국에 갔고,
신해철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 김진표를 영입해 NOVA SONIC을 결성해 활동했는데,
그 압도적인 존재감의 한 축을 차지하던 신해철의 부재 때문일까요.
NOVA SONIC은 김진표의 탈퇴 이후 만든 4집 이후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신해철은 그 개인으로 놓고 봐도 최고수준의 이력을 보유한 뮤지션입니다.
개인적 수작인 [정글 스토리] 음반은 아직도 생각해봄직한 걸작이구요.
비운의 천재라고 할 만한 윤상과의 합작 일렉트로니카 프로젝트 NO DANCE도 빼놓을 순 없죠.
하지만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뮤지션 신해철의 정점은 N.EX.T 시절이었다고 봅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 건지, 아니면 밴드에 대한 집착이 남아서 그런 건지 2003년에 N.EX.T를 재결성합니다.
(그 이전에도 MONOCROM과 Wittgenstein이라는 밴드를 결성한 적이 있습니다만,
평론으로 보나 개인적으로 보나 가장 이상적인 밴드 활동은 역시 N.EX.T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멤버도 이제는 김세황과 신해철을 빼면 신예들로 그 빈자리를 채워놓은 상태이고,
N.EX.T의 팬이었던 사람들은-저도 그렇고-3집 라인업이 최고였다고 봅니다.
하지만 10년 전의 음악과 지금의 음악이 같은 목표점을 추구한다고 똑같이 각광받을 수는 없는 법이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한 지점에 얽매여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N.EX.T는 전처럼 스케일 큰 대곡들로 사람들을 압도하기보다 소소하되 능란하게 음악을 하는 느낌입니다.
물론 이전과 같은 카리스마를 발휘하진 못하는 신해철에게서 창의성의 쇠락이 엿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창의성이 좀 떨어지는 대신 신해철은 관록과 경험으로 서서히 그 음악적 여백을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생각하는 한 음악이 귀를 가장 즐겁게 하던 시기는 90년대였어요.
그리고 90년대에 제가 가장 좋아하던 팀은 N.EX.T였구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N.EX.T의 신보가 제 가슴을 설레게 해줄 거라고 기대합니다.
2. 감성에 대한 깊고도 긴 이야기-김동률

아이돌가수의 팬이든, 인디밴드의 팬이든, 그가 부르는 노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두 번째 뮤지션은 지금도 뭐 설명할 필요가 없는 김동률입니다.
김동률은 음악적으로 늘 한결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매번 새롭다는 느낌이에요.
낮은 중저음의 음색으로 들려오는 김동률의 노래는 '가슴을 적신다'는 표현에 가장 걸맞는 노래란 생각이 드네요.
다들 아시다시피 김동률은 서동욱과 함께 90년대에 전람회라는 팀으로 데뷔했습니다.
당시 대학가요제에서 이들이 나왔을 때, 방송을 보던 사람들은 누구도 이들의 수상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대학생답지 않은 뛰어난 역량이 일단 모든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거든요.
[기억의 습작]은 데뷔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병역으로 휴식기를 가지게 되면서 아쉬움을 안겼습니다.
하지만 이후 [이방인]으로 돌아온 전람회는 조용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음악계에 자리매김하는데요.
일단 멜로디의 탄탄함이 음악적 골조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김동률의 노래를 표현하는 능력에 힘입었던 부분이 있죠.
깊은 맛이 있는 그만의 저음은 풍부한 성량과 탁월한 감정 처리로 극대화되는데요,
본인 스스로 뛰어난 작곡가이기에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노래를 만들어낸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김동률의 색채가 가장 잘 드러난 음반은 개인적으로는 솔로 3집 [歸鄕]이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사람들에게는 [다시 시작해보자]가 수록된 [Monologue]가 더 인상적이었을 것 같습니다만...
제 취향에는 좀 더 동적인 [歸鄕]이 마음에 들더군요.
국악과 라틴 등의 크로스오버도 눈에 띄지만, 여느때보다도 김동률다운 정갈한 멜로디도 마음에 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앨범의 추천곡은 [우리가 쏜 화살은 어디 갔을까]와 [歸鄕]인데요,
동명의 앨범 마지막 곡 [歸鄕]은 이 앨범에서 가장 임팩트있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가 그렇듯 김동률의 노래는 모든 이가 보편적으로 가진 추억에 대한 감성을 자극합니다.
노래는 한 남자가 갑자기 옛사랑의 데자뷰에 사로잡혀 거리 위에서 당혹스러워하며 독백하는 장면을 그려냅니다.
그래도 네가 있어서 행복했었기에, 나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너도 그렇기를 바란다.
특이할 것 없는 이 단상에 대한 김동률의 묘사는 평이한 듯하지만 깊은 공감대를 이끌어냅니다.
김동률의 음반에 참여하는 다른 뮤지션들은 대부분 세션이나 프로듀스에 참여하게 됩니다.
김동률 본인이 뛰어난 작곡가로서 다른 이의 곡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점도 있지만,
김동률의 고유한 색채에 입혀지는 그들의 목소리와 연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에요.
전람회, 카니발, 솔로가수 김동률 사이의 갭을 만들어준다고 할까요?
카니발은 김동률이 8, 이적이 2 정도의 비율로 만들어낸 프로젝트 음반입니다.
사실 음악적으로 그 지향점이 너무나 틀린 두 사람이 만난 결과는 다소 의외였습니다.
김동률 특유의 멜로디와 감수성은 그대로 유지하되, 이적 특유의 리듬감과 센스가 묻어나오는 음반이었죠.
'이적치고는 몸을 사린, 김동률치고는 너무 발랄한, 하지만 과분한 선물'이었던 이 음반 이후,
그들이 다시 뭉치는 일은 2001년 발매된 김동률 솔로 3집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함께 뭉친 노래가 바로 [우리가 쏜 화살은 어디 갔을까]입니다.
풀잎 위를 튀어오르는 물방울처럼 매끄럽게 흐르는 피아노 선율 위에 풍물에 의한 그루브가 조화를 이룹니다.
이적과 김동률의 보컬은 여전히 대조적이면서도 어색함 없이 어우러집니다.
사실 대중적 관심의 정점을 찍었던 뮤지션이 10년 이상 그 정도 지지도를 유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창작능력이라는 건 배터리같아서 일단 쓰고 만들기 시작하면 소모되는 측면이 있는데다가,
90년대와 2000년대는 음악계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연이어 일어났기 때문에 트렌드를 잡기도 힘들었죠.
신해철만 해도 2000년대 들어 대중들에게 지지받는 카드를 내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말이에요.
(2003년에 나온 넥스트의 신보는 "동방신기도 돈만 좀 들이면 이 정도 음악은 만들겠다"는 혹평을 받았죠)
그런 의미에서 전람회, 카니발을 거쳐 다시 솔로로 굳건하게 서있는 김동률은 대단히 돋보입니다.
2008년에 몇 안 되는 10만장 초과 판매의 위업을 달성한 음반 가운데 하나가 김동률의 [Monologue]였죠.
자기 색채가 뚜렷한 뮤지션들이 초기의 스타일을 고수하다 무너져버리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김동률은 기본적인 스타일의 변화도 몇번 있었지만 뚜렷한 본연의 색채를 더욱 풍성하게 과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음반을 내주기를 기대하게 되는 가장 대표적인 뮤지션,
음악 속에 숨어있는 내러티브가 이렇게나 편안하게 와서 닿는 뮤지션은 적어도 제게는 김동률뿐이네요.
최근 롤러코스터의 이상순과 베란다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했는데,
여전히 부담없지만 감칠맛나는 노래들은 김동률이 주는 그만의 색채이자 선물인 것 같습니다.
3. 길고도 아픈 성장통-이적

이젠 유부남에 애아빠지만, 사실 이적은 이렇게 점잖은 이미지는 아니었습니다.
이적의 이력을 따지기 전에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김진표와의 듀엣 패닉이겠죠.
패닉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대중음악계의 주류 가운데 가장 획기적인 마이너가 될 수 있는 신예였습니다.
주류이면서 마이너라는 말은 좀 이상하지만, 저는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네요.
대중적 인기로 볼 때 패닉은 분명 메이저였습니다만, 향하는 음악적 목표점은 마이너적이었어요.
1집의 타이틀이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달팽이]가 아닌, 심리적 공황 표현 [아무도]였다는 점에서 보여지듯,
대중이 패닉이라는 팀에게 원하는 음악과 패닉이 지향하는 음악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느껴졌습니다.
1집의 히트곡인 [왼손잡이]나 [아무도]는 '초보 크리에이터'스러운 허세와 반항기도 얼핏 엿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창작자는 세 가지의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아주 밝고 유쾌한 시작, 반항기와 우울함으로 가득한 중반, 그리고 관조적이며 느긋한 완성적 창작자 시기.
두 번째 시기를 겪지 않고서 대중 앞에 나서는 이들은 한 번쯤은 두 번째 시기를 겪고 침잠하거나, 부상합니다.
적어도 크리에이터 이적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하늘을 달린' 케이스라고 저는 생각해요.
패닉 2집 [밑]은 그래서 더욱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음악적 예각을 한껏 날카롭게 다듬은 이 음반은 당시에도 음악적으로 호평받았지만, 흥행은 꽝이었어요.
물론 대한민국 음악사에 남은 100대 명반중 하나라는 점에서 이 음반의 가치는 지금도 충분합니다.
이적 특유의 리듬감과 귀에 감겨오는 멜로디 라인이 매력적인 타이틀곡 [U.F.O]는 물론,
철학적 성찰을 깊숙히 내포한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또한 매혹적인 트랙입니다.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1집때보다도 더욱 강하게 드러나는데요,
강한 자들의 그것을 '살찐 돼지'라 표현하는 타이틀곡 [U.F.O]에서 쉽게 알아들을 수 있죠.
그 결과로 받은 상이라면 심의 불가 판정말고는...대한민국 영상 음반 대상이 있군요.
-지금이야 "오늘밤 너랑 나랑 지지고 볶자"는 식의 저열한 가사의 노래가 유해등급 판정을 받지만 말이죠,
이 당시에는 사회적 비판이 지나치다 싶을 때 찍는 낙인으로 사용했는데요,
이건 적어도 90년대 중반까지는 명예로운 전과라고 부를 만했습니다.
어줍잖은 아이돌 가수들과, 언론플레이로 벼락스타가 된 몇몇 똘아이들 때문에 그 의미가 퇴색했지만요.
패닉 2집이 그들의 외부에 대한 관심과 비관적 의견을 시사하는 음반이었다면,
3집 [Sea Within]은 그들 내부로의 비관적 시선을 드러냅니다.
개인적 모순과 비관을 비교적 담담하게 그려낸 타이틀곡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는 물론,
비관주의의 끝을 달리는 듯한 노래 [희망의 마지막 조각]에서는 아예 이적의 울부짖는 듯한 보컬과 조화를 이뤄
"삶이란 거 진짜 살만한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듯한 느낌까지 줍니다.
[Sea Within]은 4집 이전에 나온 패닉 음반중에서 멜로디 라인에서는 가장 완성된 음반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노래들이 다 듣고 나면 듣는 사람까지 우울해집니다.
신경질날 정도로 우울한 음반, 그게 제가 생각하는 패닉의 3집이었어요.
팀 구성은 모두 다 알다시피 랩을 담당한 김진표와 보컬 겸 프로듀서 이적, 두 사람의 듀엣입니다.
지금이야 김진표가 자기 음악으로도 꽤 인정받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평가만 놓고 보면, 그냥 '이적에 딸린 덤' 이었어요.
지금도 생각해 보면 패닉 1집은 김진표의 랩을 빼고 들어도 큰 문제가 없거든요?
이적이 지닌 확고한 음악적 역량이 오히려 김진표의 파트를 만들어주기 위해 소모되지 않나 싶게 말이죠.
하지만 랩만으로 이뤄진 거의 최초의 음반, 김진표 1집은 당시에는 몰랐지만 꽤 상당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이후로도 김진표라는 래퍼의 능력이 계속해서 수직 상승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구요.
이후로 김진표의 랩은 패닉 3집에 이르러서는 조금 과한 감도 있지만 라임면에서 거의 환상적인 수준에 이르렀죠.
그리고 지금 래퍼 김진표는 대한민국 최고의 래퍼 가운데 한 사람이구요.
드렁큰 타이거의 [난 널 원해]의 작사가가 바로 김진표라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1집 활동 이후 이적이 '너 만약 내가 (패닉 때려치우고)혼자 하겠다고 하면 넌 뭐 할래?"라고 다그쳤다는데요,
이 한 마디로 이적은 한국 최고의 래퍼를 키워낸 인재육성의 달인이 된 셈일까요...?
물론 이 음반은 이적의 프로듀스에 의한 비중이 더 크기는 하죠.
이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 유행하는 랩 음악과는 상당히 이질적입니다.
랩 음악이 비트와 그루브를 바탕으로 한다고 그러던가요?
그런데 김진표 1집은 멜로디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요즘 래퍼들 가운데에서도 이 정도의 멜로디 라인을 이끌어내는 그룹은 제가 아는 한 에픽하이뿐인 거 같아요.
솔로가수 이적의 이야기를 하자면, 솔로 1집은 그닥 큰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적의 솔로 1집인 [Dead End]는 지나친 과욕의 결과였다고 봐요.
음악적 시도는 물론 좋지만, 시도가 시도에서 끝난다면 적어도 프로 뮤지션의 생산물은 아닙니다.
된장찌개에 된장 대신 고추장을 넣어보면 어떨까, 수준의 새로운 시도가 꼭 좋은 건 아니잖아요?
솔로로서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던 이적의 방황 시기를 잘 보여주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니발 시기가 좋았다거나 패닉 시기가 그나마 나았더라는 생각, 저만 한 건 아닐 겁니다.
그나마 딱 하나, 유독 아름다운 가사가 돋보이는, 이적의 페르소나라고 할 만한 피아노에 기대어 부른
이 앨범의 베스트 넘버-그리고 솔로가수 이적의 베스트 넘버 중 하나이기도 한 [RAIN]은 지나칠 수 없는 노래죠.
이후 이적은 웰메이드 밴드 GIGS를 결성했던 적이 있는데요,
GIGS 1집은 이적 개인의 색채보다는 다른 멤버들의 다양한 음악적 색채를 조화롭게 재구성한 명반입니다.
비어있는 부분은 여백의 미, 넘쳐나는 부분은 열정의 흔적이라고 할 만한 음악적 완성도가 돋보이는 음반입니다.
개인적으로 2집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솔로 1집 이후 지나친 자아 탐닉에 빠진 이적의 방향성이 2집부터 다시 고개를 들었다는 느낌이었거든요.
물론 3번 트랙 [축복]과 같은 노래도 있습니다만, 지나친 음악적 과잉 추구가 균형을 깨뜨렸다는 느낌이죠.
솔로 2, 3집은 모두가 알다시피 상당히 호의적인-대중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솔로 3집인 [나무로 만든 노래]에서는 대중성과 음악성의 경계점에서 최적의 균형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는데,
타이틀곡인 [다행이다]는 심플한 멜로디에 담담한 어쿠스틱 편곡으로 감수성을 자극합니다.
지금의 아내에게 유학시절에 전화로 이 노래를 불러줬을 때 수화기를 붙들고 울었다는 일화가 있는데,
노린 건 아니겠지만 이 노래는 아직도 결혼식장의 축가로도 애용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솔로 2집의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를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이적은 제가 아는 한 이소라와 더불어 가장 군더더기없이 완벽한 가사를 쓰는 작사가에요.
우화적 내러티브를 나른한 듯 절제된 목소리로 부르는 [달팽이]가 그랬듯이,
이 노래에서 이적은 지나쳐버린 사랑에 대한 후회의 감정을 담담한 듯 조근조근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만으로 2집에 대한 평가를 마치는 것은 성급한 행동입니다.
다분히 서정적일 것만 같은 이 음반의 면면을 살펴보면 실은 베일듯이 날카로운 면모가 드러납니다.
복합적 화성과 예리한 시선의 가사가 조화를 이루는 [장난감 전쟁]은 물론,
김윤아와의 듀엣으로 비일상적이지만 조화로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어느 날]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트랙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 앨범 최고의 수작은 타이틀곡인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입니다.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감정선의 경계를 타고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이적의 보컬은 이 노래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후반부에 들어 삽입되는 하림의 하모니카 연주는 담담한 멜로디에 역동성을 가미합니다.
가사 자체가 담백한 대신, 배경에 흐르는 기타 리프는 가슴을 끊어버릴 듯 애끓게 다가옵니다.
보너스 트랙으로 김진표의 피처링이 하림의 하모니카 대신 삽입된 버전도 매력적입니다.
얌전한 원곡에 김진표의 랩은 은근한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네요.
4집으로 김진표와 함께 돌아온 패닉은 그야말로 사치스러운 선물이었습니다.
패닉 1집 당시의 고민 많고 허세 가득한 싱어송라이터는 어느덧 그 역량의 정점을 달리는 중견 뮤지션이었고,
이적에게 딸린 덤 같았던 김진표는 오래 전에 이미 수준급 래퍼가 되어 있었죠.
[로시난테]는 이들의 음악적 성장을 완벽하게 과시합니다.
경쾌한 퍼커션 연주와 부담없이 귀에 꽂히는 어쿠스틱 기타, 이적의 성숙된 보컬과 김진표의 랩 실력.
적어도 이 음반에서 패닉은 절대 혼란스럽지가 않습니다.
[로시난테]는 패닉 두 사람의 개인적 성숙과 음악적 성장을 그 한 곡에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싱글 [정류장]은 눈물이 날 만큼 아릅답습니다.
삶의 가장 암담한 순간에, 자기 자신만큼 아파하는 그 누군가에 대한 감사와 애정을 노래하는 잔잔한 가사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껏 차오른 감정을 밀어내는 듯한 이적의 목소리도,
파노라마처럼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편곡도, 어느 하나 부족한 곳이 없는 명곡입니다.
그리고 대망의 솔로 3집 [나무로 만든 노래]는 이적의 음악적 성취도를 한껏 과시한 음반입니다.
음반 제목에서 보여지듯 언플러그드에 치중한 이 음반은 이적이라는 뮤지션의 면모를 부정하는 듯합니다.
이적이라고 하면 하드한 사운드의 락음악이 주를 이룰 것만 같은데도 불구하고,
어깨에 힘 빼고, 기름기를 체에 걸러 쫙 걸러낸 듯한 이 음반은 '대중음악사에 남을 명반'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아, 이게 이적 노래가 맞긴 하는 건가?"싶은 느낌이랄까요.
그 무수한 시도 끝에 만들어낸 완성품은 백남준식 전위예술이 아니라 밀레의 [만종]과 같은 단순함이었죠.
보컬면에서의 기교 또한 멜로디와 편곡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너무나 무난하고 자연스러워서, 턱을 괴고 마냥 하염없이 귀를 기울이게 되는 그런 노래들이 가득합니다.
이적의 음악적 궤적은 고민과 반항기로 똘똘 뭉친 한 소년의 성장 과정을 그린 우화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처음에는 천방지축 날뛰며 반항하고,
다음에는 고래고래 욕하고 소리지르고,
혼자서 혼란스러워서 고민하고 방황하다가도,
이내 결국 좌절하고 포기하는 듯 무기력해지다가,
세상을 관조하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나아가는-어른이 되어가는 듯한 과정.
더 이상의 고민 없이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서 달려가는 그의 목소리가 들녁 바람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면,
저 또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일까요?
참고로 위에 소개한 가수들 가운데 제가 10대 시절에 가장 좋아한 뮤지션은 N.EX.T였습니다.
사실 이 포스트의 시작이자 목적은 N.EX.T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하다 보니 살이 붙었네요.
그리고 지금 막 세 번째 수정을 했는데도 아직 덧붙이고 싶은 말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덧붙이다가는 진짜 이야기가 山만해질 것 같아서 이만...
이글루스 가든 - 명반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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